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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의 찬미 - 드라마

양억 2018. 12. 11. 14:46

사의찬미: 죽음을 기리고 칭송함.

  • 찬미: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나 위대한 것 따위를 기리어 칭송함.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찬미한다는게 타이틀부터 역설적이다. 드라마 사의찬미를 보기 전 윤심덕에 대해서 약간의(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배경지식을 쌓고 봤다. 둘의 동반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한 근거가 없이 카더라로만 남아있더라. 총 6화로 구성된(70분 기준 3부작) 단편작이었고 때문에 금방 볼 수가 있었다. 드라마를 다 본 후에 관련자료를 인터넷에서만 찾아봤다. 드라마와 관련자료 (구글북: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매혹시킨 치명적인 스캔들) 를 비교해볼까 한다.


주인공 두 명 모두 당시의 엘리트들이었고 현대에서는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포의 부잣집 아들이자 당대 걸출한 극작가와 조선최초 소프라노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일본 유학 중 어떤 계기로 약 두 달간의 순례극을 준비하는 극예술협회에서 만나 인연을 키워나가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순례극단의 여정이 끝나고 김우진이 자신의 집에 극단원들을 초대함으로서 윤심덕이 그가 (저렴이 하숙집에서 생활하고 없는 생활비를 쪼개 극단 운영비로 지원하는줄 알았지만) 부잣집 도련님이면서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에서 묘사하길 모든 여정이 끝나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동생들(윤성덕, 윤기성)을 데리고와 가족 음악회를 열어달란 초대에 응해 목포에 내려갔다고 한다.


디테일의 차이지만 상황에 따라 그녀의 감정 상태는 달라질 여지가 있음이 충분하다. 그가 유부남이란걸 알고 나서도 그에게 계속 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술인이란 동질성 그리고 그의 부자임에도 검소하게 사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후 꾸준한 연락을 하며 각자의 길에서 성장해 나가다 결국 위기를 맞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로 접근한다.


김우진은 극작가로서 터지는 포텐과 장남으로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가업 사이의 딜레마가, 윤심덕은 일본까지 유학 다녀올 수 있도록 책임져 줬으니 이제 자신들과 동생들을 책임지라는 압박 (혹은 드라마에 나오길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의 압박으로 인해) 과 국내 1호 소프라노지만 대중적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있어 페이가 세지 않지만 자기 직업의 긍지 사이의 딜레마가 생겨났다.


그로 인해 둘은 다시 만나 죽음에 대한 준비 (김우진은 동생과 부인에게 유서를, 윤심덕은 예정에도 없던 사의찬미의 녹음을) 를 마치고 일본에서 부산행 여객선을 탑승하고 그날 새벽 현해탄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들의 자살 소식이 밝혀지고 나서야 민주주의 운동중 분신하신 이한열 열사가 생각난다. 스스로의 몸을 죽여 민주화의 도화선이 된것 처럼 그들도 스스로의 몸을 물에 빠뜨려 결과적으로 김우진으로서는 현대극의 발전의, 윤심덕으로서는 당시 여성에게 수동적이고 구시대적인 사회상에서 벗어나 여성도 능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성인권의 발전의 도화선이 됐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현재의 고통과 시련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당시 조선인 예술가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에 기인한 고통과 시련이 이 정도였단 것을 보여주기에는 6부작으로는 너무 짧았던걸까. 초점을 이후 일어난 역사들에 대해 초점을 더 뒀다면 노잼이었을지언정 이들의 스캔들에 대한 메시지가 더 잘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여담으로 당시 유명한 화가이자 여러 직업을 가졌고 윤심덕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아보이는 나혜석은 윤심덕의 공연을 보고 극딜을 먹였다.


듣기에 하도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씨이기에 마침 기회가 있어 들으러 간 것이다. 음량은 충분하나 소프라노음이 아니오, 알토 음이였다. 다른 때 독창한 것도 그러한지 모르지만 이 날 두 가지 독창한 것은 음악이란 것보다 창가(唱歌)였다. 없는 표정을 일부러 내는 것은 비열한 편이 많았다. 그러고 호의로 보면 활발하다고 할는지 너무 껍적대는 것 같았다. 좀 자연한 태도를 같도록 수양하는 것이 어떠할는지(「윤심덕 음악회를 보고」, 『개벽』 1924년 7월호 )


결론:



  • 당시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고난은 현대 못지 않게 상당히 많았다. = 비운의 예술가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 개화가 되고 전통적인 유교사상에서 점차 벗어나 남여간의 연애의 중심에 신여성이 등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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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비약되거나 잘못되거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 꼭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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