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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가방끈 긴 사람의 이기심

양억 2020. 9. 17. 21:17

새로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면서 이런 일을 할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모델을 실체화하기 위해 내가 필요해서 나를 데려가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현대표의 용인하에 이전 회사에 묶여있던 계약관계를 풀어낼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고 했다. 전대표, 이사와 나까지 다 같이 이 곳으로 옮겼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나는 이전 회사의 계약관계를 풀 수 있도록 열심히 제품을 생산해냈다.

대표가 여지를 준 시간은 5월 단 한 달이었다. 그 이후로는 대표의 눈치를 보며 외주업체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도 대표가 알아주지 않는 일이었다. 눈치가 보일수록 외주를 맡은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지쳐갔다.

이사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최대한 끌고 웬만하면 해주지 말아라. 해주지 말라는 말은 곧 관계를 끊어내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본인이 다 지겠다고 했다. 본인의 처남에게 걸려있는 계약이니 그러려니 했다. 책임을 다 지겠다는데서 신뢰가 갔다.

거의 마지막 요청사항이 나에게 도착했다. 이제는 그냥 빨리 해주란다. 이것만 하면 끝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스트레스는 노도와 같이 밀려왔다. 번아웃이란 느낌이 찾아왔다. 이사에게 더 이상 못하겠고 나는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알겠단다. 본인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며칠의 시간이 흘러 어제다. 이 회사와 유지보수 계약을 맺자고 한다. 듣자마자 내가 이러려고 같이 옮겨왔나 싶었다. 이 회사에서 세운 가설을 검증하는데 내 노동력을 쓰고 싶었는데 어디 어줍짢게 남이 싸둔 똥을 치우려고 옮겨온건 아니니깐.

내 입장 뿐만 아니라 대표의 입장도 있다. 대표는 빠른 시간 안에 투자금을 통해 서비스를 런칭해 계속 투자받는 구조를 원하고 있다. 자급자족 형태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걸린다. 이사는 본인의 책임을 나와 대표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있다. 대표에게는 안정적으로 매출이 나게 해주겠다고 달콤한 말로 꼬시겠지. 나에게서는 잠재력을, 대표에게서는 생산력을 빼앗아간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많은 생각을 해보고 오늘 아침에 이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못하겠다 했다. 회사는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꼰대아닌 꼰대같은 발언을 한다. 기분이 상했다. 나도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을 선에서 말했다. 팀 단위로 일하려고 여기 온거지 혼자 일하려고, 고립되려고 여기 온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나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아껴줬는데 팽시킬거라고 생각하냐고. 이유가 있으니깐 팽시킬 것 같다고 말했다. 진짜로 나를 아꼈다면 난 그를 의심조차 하지 않고 따랐을 것이다. 먼저 믿음을 주지 않는데 어떻게 뭘 믿고 그가 하자는대로 따를까?

더 이상 이야기했다가는 언성만 높아질 것 같다며 대표가 시키는 일 잘 해보라고 비꼬며 자리를 비운다. 하루가 거의 흘러갔다. 모두가 다 퇴근한 뒤 그는 대표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나를 진짜로 팽시키겠다는 이야기 혹은 본인의 책임을 놓을 수 있는 방법, 이 회사와 외주계약을 하자는 이야기. 둘 중에 하나일 것 같다.

매스컴을 통해 배웠지만 실습을 하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가방끈 긴 사람이라고 이기적이지 않으란 법 없다. 가방끈 긴 사람이라고 책임과 본분을 다 하리란 법 없다.

이후에 나의 행보는 어떻게 될지. 내 길은, 내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지 누구에게 기대어서는 절대 안됨을 머릿속에 한 번 더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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